제 4 편 인간세(人間世)
1. (어지러운 나라로)
안회(顔回)가 공자에게 여행을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디로 가려는가?”
“위(衛) 나라로 가려 합니다.”
“무엇 하러 가려는가?”
“제가 들으니 위나라 임금이 젊은 혈기에 제멋대로 권력을 남용하면서도 제 허물을 모른답니다. 백성들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마치 늪지에 쓰러져 시든 풀과 같아, 백성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잘 다스리는 나라를 떠나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원 집 문 앞에는 병자가 많은 법’이라 하신 말씀에 따라, 위나라의 병을 고칠 길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2. (스스로 도를 굳히고)
“아! 아서라. 네가 거기 가면 결국 처벌이나 받을 것이다. 무릇 도를 뒤섞어서는 안 된다. 뒤섞으면 갈래가 많아져서 헷갈리고, 헷갈리면 근심 걱정이 생긴다. 근심 걱정이 있으면 남을 도울 수 없다. 옛 지인(至人)들은 먼저 스스로 도를 굳힌 뒤에 남을 도왔다. 자기 하나 확실히 갖추지 못하고서 어떻게 포악한 자의 행위에 간여할 수 있겠느냐?
3. (이름을 내려는 데서)
더구나, 너는 덕이 어떻게 녹아 없어지고, 못된 앎이 어디서 생기는지 아느냐? 덕은 이름을 내려는 데서 녹아 없어지고, 못된 앎은 서로 겨룸에서 생긴다. 이름을 내려는 것은 서로 삐걱거리는 것이고, 못된 앎을 겨루기 위한 무기이다. 둘 다 흉한 무기라 완전한 삶을 위해서는 써서 안 될 것들이다.
4. (자기 잘남을 드러내려)
그리고 덕이 두텁고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 사람도 아직 다른 사람의 기질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고, 이름을 위해 겨루지 않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억지로 인의(仁義)니 법도니 하는 것을 포악한 사람 앞에서 늘어놓는 것은 남의 못남을 이용하여 자기 잘남을 드러내려 하는 것. 이를 일러 ‘남을 해치는 것’이라 한다. 남을 해치면 자신도 반드시 해침을 받는 법. 남들이 너를 해칠까 걱정이구나.
5. (믿어주지 않는 사람에게)
또 그가 정말 훌륭한 사람을 좋아하고 못난 사람을 싫어한다면, 어찌 굳이 너를 써서 달리 일을 꾸미게 하겠느냐? 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왕은 자기의 권세를 등에 업고 그럴듯한 말로 너를 압도하려 할 것이다.
눈은 어리둥절, 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네 입은 핑계로 어물어물, 네 태도는 쭈빗쭈빗, 네 마음은 지당지당.
이것은 불로 불을 끄고, 물로 물을 막으려는 것. 이를 일러 ‘군더더기’라 하지. 일단 그에게 복종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 네가 너를 믿어 주지도 않는 사람에게 솔직한 말만 하다가는 반드시 그 포악한 사람의 손에 죽을 것이다.
6. (백성의 편을 들어)
옛날 걸(傑)왕이 관룡봉(關龍逢)을 죽이고, 주(紂)왕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다. 이렇게 죽은 두 사람은 인격을 잘 닦은 사람들이었지만, 신하의 신분으로 백성의 편을 들어 그들을 동정하다가 임금의 눈에 거슬리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훌륭한 인격이 오히려 임금에게 그들을 제거시키도록 하는 빌미를 준 셈이 되고 말았다. 이 둘은 모두 이름 내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옛날에 요 임금이 총지(叢枝)와 서오(胥敖)를 공격하고, 우왕이 유호(有扈)를 쳤는데, 이 나라들은 황무지가 되고, 임금들은 모두 형벌을 받아 죽었다. 끝없이 군대를 동원하고, 실리를 탐내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모두 명예와 실리를 좇았다. 너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명예와 실리의 추구는 성인도 물리칠 수 없는데 네가 어찌 물리치겠느냐. 그러나 너에게도 [가겠다는] 까닭이 있을 터이니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7. (한꺼번에 큰 덕을 이야기한들)
안회가 말했습니다. “단정하고 겸허하며, 근면하고 오로지 하나에 전념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지. 그런다고 어찌될 것 같으냐? 위 나라 임금은 본래 기운이 넘치고 잘난 체를 하며, 한결같지 못한 사람이다. 아무도 그 비위를 맞출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정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이른바 ‘나날이 덕을 닦는 일’도 못하는데, 하물며 한꺼번에 큰 덕을 이야기한들 무엇하겠느냐? 고집이 세어 꺾을 수가 없다. 겉으로는 네 말을 듣는 척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거들떠 볼 가치조차 없다고 여길텐데 무슨 일이 되겠느냐?”
8. (하늘과 함께함)
“그럼 제가 속으로는 곧은 마음을 지니고 겉으로는 굽실거리고, 또 제 의견을 말하더라도 반드시 옛사람에 빗대어 하겠습니다. 속으로 곧은 사람들은 하늘과 함께한 사람들. 하늘과 함께한 사람들은 천자(天子)나 자기들이나 다 같이 하늘이 낸 자식이라 알고 있는데, 자기 말을 사람들이 인정하든 말든 상관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천진스런 아이 같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하늘과 함께함’의 뜻입니다.
8. (인간들과 함께함)
굽실거리는 사람은 인간들과 함께하는 사람들. 손을 높이 들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절하는 것이 남의 신하된 자의 예절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데, 저라고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이 하는 대로 하면 사람들이 헐뜯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인간들과 함께함’의 뜻입니다.
9. (옛사람들과 함께함)
제 의견을 말하되 옛사람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옛사람들과 함께하는 일. 제가 그 말로 가르치고 꾸짖더라도 그것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옛사람이 하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직언을 하더라도 큰일 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옛사람들과 함께함’의 뜻입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10. (꾸민 마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안되지. 그렇게 해서 될 것 같으냐? 꾸밈이 너무 많아 좋지 않다. 고리타분하기는 하지만 벌은 면하겠구나. 그러나 그저 그뿐이지. 그것으로 어떻게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 아직도 너는 너의 그 [변화시킬 수 없는 모범의] 마음을 스승처럼 떠받들고 있구나.”
11. (심재(心齋), 마음을 굶김)
안회가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이제 더 생각해 낼 도리가 없습니다. 부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공자가 말했습니다. “재(齋)하라. 너에게 말한다만, [마음을 그냥] 가지면서 한다면, 쉽게 된다고 하는 자는 저 맑은 하늘이 마땅하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저는 가난하여 여러 달 동안 술도 못 마시고 양념한 음식도 못 먹었습니다. 이 경우 재(齋)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은 ‘제사 때의 재(祭祀之齋)’지, ‘마음의 재(心齋)’가 아니다.
12. (기(氣)로 들어라)
안회가 말했습니다. “부디 ‘마음의 재’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도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氣)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道)는 오로지 빈(虛)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마음의 재(心齋)’니라.”
13. (이름 같은 데 영향을 받지 말라)
안회가 말했습니다. “제가 심재(心齋)를 실천하기 전에는 안회라는 제 자신이 실재처럼 존재하지만, 심재를 실천하여 제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 이것을 ‘비움(虛)’이라 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다.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네가 위나라에 들어가 그 새장에서 노닐 때, 이름 같은 데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받아 주거든 소리내고, 받아주지 않거든 잠잠하라. 문도 없고 나갈 구멍도 없거든 ‘하나’로 집을 삼고, 부득이한 일에만 거하라. 그러면 그런 대로 성공할 것이다.”
14. (좌치(座馳), 앉아서 달림)
걷지 않고 자취를 안 남기기는 쉽지만, 걸으면서 자취를 안 남기기는 어려운 일. 사람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쉬우나, 하늘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어려운 일. 날개로 난다는 말은 들었겠지만, 날개 없이 난다는 말은 못 들었을 것이다. 앎이 있어 안다는 말은 들었겠지만, 앎이 없이 안다는 말은 못 들었을 것이다.
저 빈 것을 보라. 텅 빈 방이 뿜어내는 흰 빛. 행복은 고요함에 머무는 것. 머무르지 못하면 이를 일러 ‘앉아서 달림(座馳)’이라 하느니.
15. (실천궁행(實踐躬行))
귀와 눈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이나 앎을 밖으로 하라. 그러면 비상한 힘도 들어와 머물 것이니, 사람들이[모여든다는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 이것이 만물의 변화라는 것이니, 우 임금, 순 임금도 여기에 의거했고, 복희(伏戱)·궤거(几蘧)도 이를 평생 실천궁행(實踐躬行) 했다. 하물며 그만 못한 우리 보통사람들이랴.“
16. (덕을 가진 사람)
섭공(葉公) 자고(子高)가 사신(使臣)으로 제(齋)나라에 갈 때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제게 준 임무가 막중합니다. 제나라에서 사신은 정중하게 대접하지만, 일은 빨리 처리해 주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도 재촉할 수 없는데, 제후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 심히 두렵습니다. 일찍이 선생께서는 제게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성공을 바라지 않고 하는 일은 드물다. 성공하지 못하면 반드시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할 것이고, 성공하면 음양(陰陽)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을 사람은 덕을 가진 사람뿐이라’ 하였지요.
17. (음양으로부터의 괴로움)
저는 요리를 간단히 해서 별 맛 없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래서 요리를 할 대 부엌에서 덥다며 시원하게 해 달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왕명을 받고, 저녁에 얼음 물을 들이켰습니다. 제 속에 열이 난 것입니다. 제가 거기 가서 사정을 보기도 전에 벌서 음양으로부터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어, 일이 안되면 반드시 사람에게도 괴로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중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남의 신하로서 이렇게 부족하니 이 일을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선생께서 한 말씀 해주실 수 없으실지요.“
18. (부득이한 일)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지킬 것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명(命)이요 다른 하나는 의(義)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명이므로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의로서 어디를 가나 임금이 없는 데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어디를 가도 이 두 가지를 피할 수는 없는 것. 그러기에 이를 ‘크게 지킬 것(大戒)’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언제 어디서나 부모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孝)의 극치요, 신하는 언제 어디서나 임금을 편안하게 섬기는 것이 충(忠)의 완성입니다. 자기 마음을 섬길 때 슬픔과 기쁨이 눈앞에 엇갈리어 나타나게 하지 말고, 불가능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운명으로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덕(德)의 극치입니다. 신하나 자식된 사람이 부득이한 일을 당하면 사물의 실정에 맞게 행하면서,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가셔야 합니다.
19. (사실과 다른 과장)
내가 들은 것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무릇 가까운 나라와 사귈 대는 서로 신의로 대하고, 먼 나라와 사귈 때는 말로 그 진심을 나타냅니다. 말은 반드시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양쪽이 서로 기뻐하고 서로 노하는 것을 말로 전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양쪽이 다 기쁘면 서로 좋은 말을 과장하고, 양쪽이 다 노여우면 서로 헐뜯으며 나쁜 말을 과장합니다. 과장하는 말은 사실과는 먼 말입니다. 사실에서 먼 말에는 신의가 없습니다. 신의가 없으면 말을 전한 사람이 화를 입습니다. 그래서 격언에 이르기를 ‘평소 그대로 전하고 과장된 말을 전하지 않으면 안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 (재주를 겨루는 사람)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재주를 겨루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양(陽)으로 시작해서 언제나 음(陰)으로 끝냅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여러 가지 기묘한 술수를 씁니다. 처음에는 예의를 갖추고 술을 마시던 사람도 언제나 난장판으로 끝을 냅니다. 너무 지나치면 여러 가지 기묘한 쾌락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성실하게 시작해서는 언제나 바람직하지 못하게 끝냅니다. 시작은 간단하지만 곧 엄청나게 커져 버리는 것입니다.
21. (간사하고 일방적인 말)
말(言)이란 바람이나 물결입니다. 행위에는 얻음과 잃음이 따릅니다. 바람과 물결은 움직이고 쉽고, 얻음과 잃음은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모두 간사한 말과 일방적인 언사 때문입니다. 짐승이 죽을 때는 무슨 소리를 낼까 가릴 여지가 없습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마음에는 사나운 기운이 함께 생겨나는 것입니다.
22.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 너무 지나치게 다그치면, 상대방은 반드시 좋지 못한 마음으로 이에 반응하게 됩니다. 좋지 못한 마음으로 반응하면서도 그런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자신도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가 어떻게 끝장을 낼지 누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격언에 이르기를 ‘군주의 명령을 고치지도 말고, 이루려고 너무 애쓰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다. 도(度)를 넘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명령을 고치거나 꼭 이루려 너무 애쓰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좋은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좋지 못한 일은 절로 되어 고치지도 못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두고, 중심을 기르는 데 전념하십시오. 이것이 최고입니다. 무엇을 더 꾸며서 보고할 것 있겠습니까? 그저 그대로 명을 받드는 것뿐.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23. (거백옥(蘧伯玉)의 충고)
안합(顔闔)이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태자를 보좌하러 가게 되어, 거백옥(蘧伯玉)에게 자문(諮問)했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덕이 좀 모자랍니다. 그가 하는 일을 그냥 두면 나라가 위태롭고, 제재를 하면 제 몸이 위태합니다. 그의 지능은 겨우 남의 잘못을 알아볼 정도는 되지만 잘못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아내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24. (겉으로 따르고 속으로는 조화를)
거백옥이 대답했습니다. “훌륭한 질문입니다. 조심하고 신중하십시오. 우선 몸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그를 따르고, 속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조심해야 합니다. 그를 따르더라도 무조건 빠져들어서는 안 되고, 조화를 이루더라도 겉으로 나타내지는 말아야 합니다. 겉으로 따르다가 무조건 빠져들면 뒤집히고, 파멸하고, 무너지고 엎어집니다. 조화를 겉으로 나타내면 사람들에게 소리를 듣고, 평판이 나빠지고, 이상스러운 일이나 나쁜 일을 당하게 됩니다.
태자가 어린애가 되거든 당신도 어린애가 되고, 멋대로 행동하거든 당신도 멋대로 행동하십시오. 엉터리같이 굴거든 당신도 함께 엉터리같이 구십시오. 그 사람을 잘 인도해서 흠 잡을데 없는 경지로 들어가야 합니다.
25. (제 능력을 과신하면)
당신은 사마귀라는 벌레를 아시지요? 화를 내어 팔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수레에 맞섭니다. 제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짓은 제 능력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조심하고 신중하십시오. 스스로 훌륭함을 자랑하여 거스르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26. (그 성질을 맞추어)
당신은 호랑이를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지요? 호랑이에게 먹이를 산 채로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죽일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또 먹이를 통째로 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찢을 때 생기는 사나운 노기를 염려해서입니다. 호랑이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알아서 그 사나운 노기를 잘 구슬리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사람과 다르지만 저를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기르는 사람이 호랑이의 성질을 잘 맞추기 때문입니다. 호랑이가 살기(殺氣)를 드러내는 것은 그 성질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27. (뜻은 극진하나 방법이 잘못되면)
말(馬)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좋은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큰 대합 껍질로 말 오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말 등을 때렸습니다. [놀란] 말이 재갈을 벗고 야단하는 바람에 [말을 사랑하던 사람의] 머리를 깨고 가슴을 받았습니다. 말을 사랑하는 뜻은 극진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28. (장석(匠石)과 사당(祠堂) 나무)
석(石)이라는 목수가 제(齋)나라로 가다가 곡원(曲轅)이라는 곳에 이르러 토지신을 모신 사당의 상수리 나무를 보았습니다. 나무의 크기는 소 수천 마리를 가릴 만했고 둥치는 백 아름, 높이는 산을 굽어볼 정도였습니다. 맨 아랫가지가 바닥에서 열 길쯤 올라가 뻗었는데, 거기에는 통배를 만들 수 있는 가지만 해도 여남은 개가 되었습니다. 구경꾼들이 모여 장터를 이루었는데 목수 석(石)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 버렸습니다.
29. (오래 산 까닭은)
제자가 한동안 보고 나서 석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제가 그 동안 도끼를 들고 선생님을 따라다녔지만 재목감으로 이처럼 훌륭한 나무를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눈여겨 보시지도 않고 지나치시니 어인 일이십니까?”
“됐네.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말을 말게. 쓸모가 없는 나무야.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짜면 곧 썩고, 그릇을 만들면 쉬 부서지고, 문을 짜면 수액이 흐르고, 기둥을 만들어 세우면 좀이 슬 것이니, 재목이 못 돼. 아무짝에도 못 써. 그러니까 저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거야.”
30. (재능 때문에 비참한 삶)
목수 석이 집으로 돌아오자, 사당 상수리나무가 꿈에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를 무엇에다 비교하려는고. 저 좋다는 나무들에다 비기는가? 아가위나무, 참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 따위? 열매가 익으면 뜯기고 욕을 당하지.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기고. 그런 나무들은 자기들의 [열매 맺는] 재능 때문에 삶이 비참하지. 하늘이 준 나이를 다 못 살고 도중에서 죽는 법이니, 스스로 세상살이에서 희생을 자초한 셈이라. 모든 것이 다 이와 같은 것이지.
31. (쓸모없는 쓸모)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쓸모없기를 바랐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완전히 그리 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일세. 내가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클 수 있었겠는가? 또, 그대나 나나 한낱 하찮은 사물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그대는 상대방만을 하찮다고 한단 말인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없는 인간이 어찌 쓸모없는 나무 운운한단 말인가?“
32. (사람들과 다른 판단 기준)
석이 깨어나 그 꿈 이야기를 하자 제자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쓸모없기를 바랐다면, 왜 사당나무 노릇은 하는 걸까요?”
“쉿! 조용하게. 저 나무는 그냥 [한 가지 방편으로] 사당에 의지할 뿐이야. 사람들은 그 진의도 알지 못하고 욕을 하고 있지. [저렇게 생각이 깊은 나무는] 설령 사당 나무가 되지 않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잘리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 나무가 자리를 보전하는 방법은 우리 사람들과 다르지. 보통의 판단 기준으로 그것을 떠받든다거나 한다면, 뭔가 빗나간 것 아니겠는가?”
33. (거목(巨木)과 신인(神人))
남백자기(南伯子綦)가 상구(商丘)에 놀러 갔다가 엄청나게 큰 나무를 보았는데,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천 대를 매어 두어도 나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말했습니다. “이 어찌된 나무인가? 반드시 특별한 재목이겠군.”
그러나 위로 가지를 올려다보니 모두 꾸불꾸불하여 마룻대나 들보 감도 아니었고, 아래로 큰 둥치를 보니 속이 뚫리고 갈라져 널 감도 아니었습니다. 잎을 핥으면 입이 부르터 상처가 나고, 그 냄새를 맡으면 사흘 동안 취해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과연 재목이 못 될 나무로구나. 그러니 이렇게 크게 자랐지. 아, 신인(神人)도 이처럼 재목감이 못 되는 것을.”
34. (재목 감의 재난)
송(宋) 나라 형씨(荊氏)라는 곳은 개오동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었습니다. 굵기가 한 움큼이 넘는 것은 원숭이 매어 두는 말뚝 만드는 사람들이 베어 가고, 서너 아름 되는 것은 집 짓는 이가 마룻대 감으로 베어 가고, 일여덟 아름 되는 것은 귀족이나 부상들이 널 감으로 베어 가 주어진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도끼에 찍혀 죽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재목감이 됨으로 당한 재난입니다.
이마에 흰 점이 박힌 소나 코가 젖혀진 돼지, 치질 앓는 사람은 황하 신의 제물로 바칠 수가 없습니다. 무당들은 이것들을 상서(祥瑞)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지만, 신인(神人)들은 오히려 이를 크게 상서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35. (천수를 다하는 덕)
‘지리소(支離疏)’라는 곱추는 턱이 배꼽에 묻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고, 상투가 하늘을 향하고, 내장이 위로 올라갔으며, 두 넓적다리가 옆구리에 닿아 있었습니다. 바느질을 하고 빨래를 하면 혼자 먹을 것은 충분히 벌고, 키질을 해 쌀을 까불면 열 식구 먹을 것은 충분히 벌었습니다. 나라에서 군인을 징집할 때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사람들 사이에 [당당하게] 다녔고, 나라에 큰 역사가 있어도 성한 몸이 아니라 언제나 면제를 받았습니다. 나라에서 병자들에게 곡식을 배급하면 3종의 곡식과 장작 열 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외모가 온전하지 못한 곱추도 몸을 보존하고 천수를 다하는데, 하물며 그 덕이 곱추인 사람이겠습니까?
36.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 없음의 쓸모)
공자가 초(楚)나라에 갔을 때, 접여(接輿)라는 미친 사람이 그의 숙소 앞을 오가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덕이 어찌 쇠했는고. 오는 세상 기다릴 수 없고, 간 세상 되잡을 수 없지. 세상에 도 있으면 성인 일 이루나, 세상에 도 없으면, 성인 그냥 살아갈 뿐. 지금 같은 이 세상 벌 면하기 힘들구나. 복은 깃털처럼 가벼우나 들 줄을 모르고, 화는 땅처럼 무거우나 피할 줄을 모르네. 그만두오, 그만두오. 덕으로 남 대하는 일. 위태롭다. 위태롭다. 땅에 금을 긋고 그 안에서 종종걸음. 가시나무여, 가시나무여. 내 가는 길 막지 마라. 내 발길 구불구불 내 발을 해치 마라. 산 나무는 스스로를 자르고 등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 잘리고, 옻나무는 쓸모 있어 베인다. 사람들 모두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고 있어도 ‘쓸모 없음의 쓸모(無用之用)’는 모르고 있구나.”
2013.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