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서 후흑학(奇書 厚黑學)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은 인간학"
이종오(李宗吾, 1879~1944)
淸末 反儒思想家
상고 시대는 인지(人智)가 발달하지 아니하였고,
생활의 어려움도 적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은 필연적으로 얇았고,
뱃속도 뻔뻔스럽게 검지 않은
문자 그대로 천진난만한 시대였다.
그러다가 인구가 증가하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이 점차로 심하게 되었고,
개인의 능력차이가 현격함에 됨에 따라,
자연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악이 생기게 되었다.
시대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인지가 더욱 개명하면서
조조와 유비와 같은 영웅이 출현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뻔뻔스러운 흑심을 갖고, 철면피한 얼굴로
아무 부끄러움 없이 천하를 종횡하였다.
이제 공맹의 학설이 아무리 숭고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영웅호걸이 되려면,
비전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다만 필요한 것은
철판같이 두꺼운 얼굴과
뻔뻔스러운 것에 철저한 흑심뿐이다.
이것을 적당히 활용만 한다면
영웅호걸이 되는 것은
마치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하늘이 인간을 창조하여
각자의 얼굴을 만들 때,
그 얼굴 속은 겉에서 볼 수 없도록 감추었다.
또 하늘이 사람에게
마음이란 것을 주었을 때도
그 컴컴한 복심(腹心)을 표면에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후흑에는 세 단계가 있다.
수련을 쌓음에 따라 1단계에서 2단계로,
2단계에서 3단계로 옮아간다.
후흑의 1단계는
'두께는 성벽처럼, 검음은 먹같이' 목표로 하는 단계이다.
얼굴 피부가 처음부터 두꺼운 것이 아니다.
처음엔 종이처럼 얇은 것이지만,
수련의 공을 쌓음에 따라 점차 두꺼워져서
성벽같이 되는 것이다.
뱃속의 검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엔 유백색(乳白色)인데,
이것도 수련의 공을 거듭함에따라 회색으로,
다시 청색, 자색을 거쳐,
마지막으로 먹같이 검게 되는데,
여기에 이르면
후흑학의 초보적인 수련에 성공한 것이된다.
그 2단계는
'두껍고도 단단하고, 검고도 빛나는'것 을 목표로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수업을 쌓으면,
상대가 아무리 급습하더로도
결코 당황하지 않고,
떨지 않으며 침착하게 이에 대처해 나간다.
"흑학에 능숙한 달인(達人)이 되면,
그것은 윤기없는 흑칠(黑漆)을 한 것처럼
보기에는 평범하나,
윤기 없는 칠의 검은 색에는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호감이 가는 것처럼,
그 한량 없고 태연한 외모 속에 있는
검은 복심은 가려서 보이지 않고,
따라서 상대는 무엇인가에 현혹되어
결국은 그 손아귀에 말려들고 마는 것이다.
조조가 그 달인이며,
중원의 제후들이 모두 그 검은 복심에
오히려 현혹되어
그 휘하에 승복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2단계로도 부족하다.
2단계에서는 아직 모양이 있고,
색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이목으로도 잘 주의해서 보면
그 뱃속을 짐작할 수 있다.
3단계는
'두꺼우나 모양이 없고, 검으나 색이 없는' 경지이다.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무색 투명한 영역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얼굴의 피부가 두껍고,
아무리 뱃속이 검더라도
고금을 통하여 누구도 그것을 간파한 사람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인물을 역사 속에서 찾기도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태여 찾는다면,
고대의 대성(大聖), 대현(大賢) 중에
몇 사람 손꼽을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웅, 호걸,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누구도 이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 인물들이다.
"유가의 중용(中庸)은
무성 무취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그 강의는 끝나는 것이며,
불교의 수업은
보리무수 명경비대(菩提無樹 明鏡非臺)의 경지에 달하였을 때
그 증과(證果)가 나타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 후흑학도
천고문외불출(千古門外不出)의 비전(秘傳)이므로
무형 무색의 경지에 달하였을 때
비로소 끝이 될 것이다."
당나라 누후덕(婁厚德)이
그의 형 사덕(師德)에게,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닦을 따름입니다."
라고 말하니,
사덕이 그 말을 듣고 근심스러운 얼굴빛을 지으면서,
"그 말은 나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다.
남이 너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너에 대하여 성을 낸 것이다.
그런데 네가 그것을 닦아 버리면,
그 사람을 뜻을 거슬려서 더 성을 내게 하는 것이다.
닦아 버리지 말고 저절로 마르게 해야 한다(唾面自乾)."
- 김시양(金時讓, 1581-1643), 부계기문(涪溪記聞)
사덕은 후흑의 진수를 터득한 달인이었고,
그 때문에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조정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최명, 삼국연의 평전 소설이 아닌 삼국지, 조선일보사, 1994, pp.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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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살아 있는 동안
두꺼운 얼굴은 모양이 없음에 이르러고,
검은 마음은 색깔이 없음에 도달하기를...
(순진 - 영악 - 순수)
201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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